2024년 가장 예술적이고 심리적인 감동을 안겨준 작품 중 하나, 바로 영화 '마리아(Maria)'입니다. 이 영화는 '오페라의 여왕'이라 불리던 전설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삶과 죽음을 조명하는 전기 드라마이자, 한 예술가의 내면을 깊숙이 탐색한 심리적 휴먼 드라마입니다. 안젤리나 졸리가 마리아 칼라스를 연기한 이 작품은 화려한 외면과 달리, 고독과 상처, 사랑과 열정이 교차하는 한 여인의 마지막 7일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마리아 칼라스, 전설에서 인간으로 내려오다
20세기 가장 상징적인 오페라 디바로 알려진 마리아 칼라스는 그리스 혈통의 미국 출신 소프라노로, 극적인 감정 표현과 독보적인 무대 장악력으로 오페라계에 혁신을 일으킨 인물입니다. 하지만 영화 '마리아'는 그녀의 업적이나 화려함만을 다루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대에서 내려온 뒤의 쓸쓸함, 사랑에 실패한 상처, 예술을 향한 끝없는 갈망과 내면의 혼란을 정면으로 응시합니다.
이 영화는 마리아 칼라스의 1977년, 파리에서 보낸 마지막 7일을 시간적 배경으로 설정합니다. 그녀는 더 이상 노래하지 않으며, 이전의 명성과는 거리가 먼 외로운 일상을 보냅니다. 영화는 이 시기를 통해 무대의 광채가 사라진 뒤 남겨진 진짜 마리아를 조명합니다. 과거 회상 장면을 통해 오페라 무대의 절정기를 교차시키며, 지금의 고독과 대비되는 그녀의 전성기를 시각적으로 표현합니다.
특히 칼라스와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와의 불완전한 사랑 이야기는 그녀의 심리적 고립과 깊은 상처를 부각하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단순히 유명 인사들과의 연애가 아닌, 한 여성이 예술과 사랑 사이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희생하고, 결국 상처받으며 살아간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무대에서 열정적으로 노래했지만, 현실에서는 누구보다 불완전하고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복합적인 내면을 안젤리나 졸리는 뛰어난 몰입으로 표현해 냅니다. 단지 연기가 아닌, 진짜 칼라스로 존재하려는 그녀의 태도는 관객이 칼라스를 '가까운 사람'처럼 느끼게 합니다. 마리아 칼라스는 이제 신화가 아닌, 누구보다 인간적인 고뇌와 외로움을 지닌 여성으로 재해석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며, 영화가 단순한 전기물 그 이상의 여운을 남기게 합니다.
안젤리나 졸리, 예술가로서의 변신
안젤리나 졸리는 영화 '마리아'를 통해 본인의 배우 경력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액션과 사회적 이슈 중심의 캐릭터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그녀가 이번엔 한 시대를 풍미한 오페라 가수, 그것도 심리적으로 복합적이고 음악적 이해가 필수적인 인물인 마리아 칼라스를 연기한 것은 매우 도전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그녀는 이 역할을 위해 무려 7개월간 오페라 발성 훈련과 발음 교정, 그리고 칼라스의 실제 생애를 바탕으로 한 감정 분석을 진행했습니다. 칼라스의 다큐멘터리 영상, 인터뷰, 교육 기록까지 섭렵하며, 그녀는 연기의 영역을 넘어 마리아 칼라스의 심리 상태를 진심으로 이해하려 노력했습니다. 실제로 오페라 가수 로리 스틴슨의 지도를 받으며, 성대 구조부터 호흡의 디테일까지 훈련했다고 전해졌습니다. 특히 영화 후반부, 마리아 칼라스가 과거의 리사이틀을 떠올리며 짧게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졸리의 실제 음성이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영화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순간으로, 배우가 자신의 목소리로 감정을 표현하는 그 장면은 관객에게 깊은 감동을 전합니다. 음성의 완벽함보다는, 진심과 몰입이 중요한 장면이었고, 졸리는 이를 훌륭하게 소화해 냅니다. 또한 졸리는 단순히 외모나 제스처의 모방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칼라스의 눈빛, 입술을 깨무는 습관, 손끝에 묻어난 불안감, 사람을 대할 때의 미묘한 거리감 등을 심리학적으로 해석하며 재현해 냈습니다. 이러한 연기 방식은 마리아 칼라스라는 인물의 내면을 더욱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단순한 역할 소화가 아닌, 한 인간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배우'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음악과 영화, 장르를 초월한 예술의 공명
'마리아'는 음악과 영화, 두 예술의 교차점에 위치한 작품입니다. 오페라라는 장르는 그 자체로 '극적인 감정'을 담고 있는 예술이며, 이를 스크린에 담아내는 일은 매우 섬세한 연출이 요구됩니다.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이전에도 [재클린], [스펜서] 등 실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전기 영화에서 심리적 깊이와 미장센의 예술성을 높이 평가받은 감독입니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오페라라는 장르의 미학과 심리적 감정을 시각적으로 결합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영화의 대부분은 조용합니다. 대사가 많지 않고, 시선의 움직임과 공간의 여백이 강조됩니다. 오페라가 클라이맥스를 향해 긴장감을 서서히 고조시키듯, 영화 또한 천천히, 그러나 강하게 감정선을 이끌어 갑니다. 마리아가 거울 앞에서 혼잣말을 하는 장면, 비어 있는 극장을 바라보는 장면, 과거 공연을 떠올리며 침묵 속에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모든 장면은 음악이 없거나, 최소한의 음만으로 연출되어 오히려 관객의 감정 집중도를 끌어올립니다. 음악이 실제로 사용되는 장면에서는 마리아 칼라스의 오리지널 음성과 졸리의 노래가 혼합되며, 감정의 진폭을 극대화합니다. 특히 오페라 '토스카'와 '노르마'의 아리아가 사용되는 장면에서는 관객의 심장이 울릴 정도로 강력한 예술적 경험이 전달됩니다. 이는 단순한 음악 삽입이 아니라, 장면과 서사의 흐름을 연결하는 서사적 장치로 기능합니다. 이처럼 '마리아'는 단순히 음악이 배경으로 깔리는 영화가 아닌, 오페라 그 자체가 영화의 구조와 리듬을 지배하는 작품입니다. 오페라 팬뿐만 아니라 예술을 사랑하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가 전하는 깊이 있는 울림을 분명하게 체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술성과 감정, 음악과 연기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전기 영화입니다. 마리아 칼라스라는 전설적인 인물을 단순히 이상화하지 않고, 한 인간의 고독과 열정, 상처와 사랑을 통해 진정한 삶의 깊이를 보여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