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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괴물] 영화 - 서사, 연출, 감정선

by alsn3519 2025.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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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23년 작품 괴물은 일본 현대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섬세하게 조망하는 동시에, 인간 내면의 복잡성을 진지하게 탐구한 작품입니다. 특히 각본은 사회적 이슈를 탁월하게 그려내는 "사카모토 유지"가 맡았으며, 음악은 세계적인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가 생애 마지막으로 작업했습니다. 괴물은 아이와 어른, 가정과 학교, 사회의 시선이 교차하는 서사를 통해,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는 세상의 모습을 조용히, 그러나 깊게 파고듭니다. 이 글에서는 괴물의 서사, 연출, 감정선을 중심으로 작품을 심층 분석합니다.

서사- 다층적 시점으로 쌓아 올린 진실

영화 '괴물'은 단순한 학교 폭력이나 오해에서 출발한 사건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건의 본질이 완전히 달라지는 과정을 정교하게 묘사합니다. 이야기의 구조는 전통적인 선형 구조가 아니라, 동일한 사건을 다양한 인물의 시점을 통해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라쇼몽 스타일'을 따릅니다. 이러한 서사 방식은 관객이 진실에 도달하는 길을 단순하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각 인물의 인식과 감정, 편견 속에서 복합적인 진실의 파편을 하나씩 모아가게 만듭니다. 영화는 한 아이가 교실에서 상처를 입는 사건을 중심으로 출발합니다. 처음에는 그저 문제아 한 명이 교사를 괴롭히거나, 혹은 교사가 아이를 학대한 것처럼 보입니다. 어머니의 시점에서는 아이가 학교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끼고, 분노와 두려움이 겹쳐져 교사에게 항의합니다. 이어지는 교사의 시점에서는 자신이 오해받고 있으며, 오히려 아이와의 소통이 단절되어 있었다는 입장이 부각됩니다. 이후 아이들의 시점으로 전환되면서, 그 사건 이면에 숨어 있던 진짜 감정과 갈등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서사 구조는 단순한 플래시백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괴물'은 한 사건을 다양한 각도에서 비추면서, 진실이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아이의 말이 전부 진실일 수도, 어른의 말이 거짓일 수도 없습니다. 모든 진실은 관점에 의해 조각나고, 사람의 감정과 상처에 따라 왜곡되며, 그것이 모였을 때에야 비로소 '어떤 진실에 가까운 무언가'가 드러납니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아이들의 시점이 중심으로 등장하면서, 그간 어른들의 시선으로 보였던 세계가 얼마나 왜곡되어 있었는지를 반전처럼 깨닫게 됩니다. 이때 관객은 '괴물'이 누구였는지를 다시 묻게 되며,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도가 얼마나 상대적인지를 실감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괴물'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는 의미를 사회적 편견, 무지, 타인에 대한 몰이해라는 구조 속에서 탐색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 내면과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모순과 파편들을 하나씩 보여주는 복합적인 성찰의 장입니다.

연출- 절제 속에 빛나는 세밀함

'괴물'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특유의 섬세한 연출이 빛을 발하는 작품입니다. 그는 자극적인 장면이나 감정의 폭발을 의도적으로 피하며, 오히려 인물들이 일상 속에서 겪는 작고 세밀한 감정의 움직임을 통해 깊은 울림을 만들어냅니다. 전체적으로 정적인 카메라워크가 주를 이루며, 군더더기 없는 미장센과 자연광을 최대한 활용한 촬영이 인물의 감정과 배경을 조화롭게 연결합니다.

영화의 대부분은 학교 교실, 가정집, 골목길, 들판 등 평범한 장소에서 펼쳐집니다. 하지만 이러한 평범한 공간들이 정제된 카메라 구도와 묵직한 사운드 디자인을 통해 상징적인 의미를 갖게 됩니다. 예를 들어, 어두운 교실은 아이들의 고립된 심리를 상징하고, 답답한 집 안은 부모와 자녀 간의 거리감을 암시합니다. 들판과 숲은 자유와 해방을 상징하는 반면, 때로는 외로움과 단절감을 상기시키는 공간으로도 기능합니다. 특히 인물의 시점이 바뀌는 전환점에서 고레에다는 반복되는 장면을 매우 정교하게 구성합니다. 동일한 상황이지만 카메라 앵글이 살짝 다르거나, 인물의 눈빛과 억양, 침묵의 길이가 달라집니다. 이 미세한 차이를 통해 관객은 하나의 사건이 어떻게 다르게 인식되는지를 체험하게 되며, 인물에 대한 감정 역시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이러한 연출은 감정의 폭발 없이도 강한 몰입감을 자아냅니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 역시 이 절제된 연출과 완벽한 조화를 이룹니다. 그의 마지막 영화 음악이라는 점에서도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 사운드트랙은, 대부분 피아노와 현악기의 조용한 선율로 구성되어 있으며 영화 전반에 걸쳐 인물의 감정 흐름을 부드럽게 따라갑니다. 음악은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가볍게 침묵을 깨며 감정의 흐름을 지배합니다. 또한 고레에다는 자연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흐린 날씨, 바람소리,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등 자연의 요소들이 극적인 대사보다 더 큰 무게를 가질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인물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영화 전체를 둘러싼 정서를 형성하는 데 큰 기여를 합니다. '괴물'은 조용한 영화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감정의 떨림과 심리의 파동이 교차하며 관객의 감각을 흔듭니다.

감정선- 상처와 용서, 그리고 성장의 기록

'괴물'의 가장 깊은 여운은 그 섬세한 감정선에서 비롯됩니다. 영화는 분노, 공포, 오해, 질투, 외로움, 사랑, 용서와 같은 다양한 감정이 등장인물들의 관계 속에서 복합적으로 얽히고설키는 과정을 탁월하게 그려냅니다. 초반에는 부정적 감정이 극을 지배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감정으로 점차 변화해 갑니다. 어머니는 처음 사건을 접했을 때, 자식이 상처받았다는 이유만으로 학교에 강하게 항의합니다. 그녀의 감정은 보호 본능이자 분노이지만, 그 안에는 자책과 두려움도 섞여 있습니다. 교사는 무관심하거나 무책임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그의 시점이 드러나면서 그 역시 체제 속에서 어떻게든 아이를 이해하려 했던 노력이 보입니다. 각 인물의 감정은 단편적인 감정이 아니라, 사회적 압력과 개인적인 상처 속에서 겹겹이 쌓인 것들입니다. 가장 인상적인 감정선은 아이들 사이에서 펼쳐집니다. 처음에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로 보였던 두 소년은,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에게 감정적으로 의지하게 됩니다. 사회로부터 소외된 경험,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 서로에게만 마음을 열 수 있는 감정이 점차 우정 혹은 사랑으로 발전해 가는 과정은 이 영화의 핵심 감정선이자, 가장 섬세하게 표현된 부분입니다. 이들의 감정은 폭발적이지 않지만, 작은 눈빛과 손짓, 함께 걷는 발걸음 속에서 진심이 전해집니다. '괴물'은 궁극적으로 타인을 ‘괴물’로 규정하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말합니다. 무지와 편견, 그리고 사회적 제도와 가족 내 압력이 누군가를 괴물로 만들며, 그렇게 만들어진 괴물은 또 다른 피해자를 낳습니다. 영화는 그 고리를 끊기 위한 방법으로 '이해'와 '공감'을 제시합니다. 이 이해는 단순히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세계를 바라보려는 노력을 의미합니다. 결말에서 두 소년이 보여주는 조심스러운 포옹, 손을 맞잡는 장면, 들판을 향해 함께 뛰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의 감정선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곳을 보여줍니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지만, 함께 걸어갈 수는 있다는 메시지. 이 영화는 그 어떤 극적인 사건보다도, 그런 작고 조용한 감정의 움직임이 얼마나 강력한 치유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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